
솔직히 저는 손발이 저리면 무조건 혈액순환이 안 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암 치료를 마친 뒤로 몸의 작은 신호 하나도 예사롭게 넘기지 못하는 편인데, 막상 저림 증상이 생겨도 "피가 안 도는 거겠지"라고 단순하게 넘기거나, 매일 먹는 호르몬억제제의 부작용이겠지 생각하고 넘겼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그 생각이 꽤 단단하게 틀려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손발 저림, 혈액순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저처럼 손발이 저릴 때 "피가 안 통해서"라고 넘기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신경과 전문의들이 빈도 기준으로 분류하는 손발 저림의 원인을 보면, 혈관 문제는 3위에 그칩니다.
1위와 2위는 각각 말초신경병증과 척추신경 압박입니다. 여기서 말초신경병증(peripheral neuropathy)이란, 척수에서 뻗어 나와 손발 끝까지 이어지는 말초신경이 손상되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전선이 피복이 벗겨지거나 끊어진 것처럼 신경 자체에 문제가 생긴 상황입니다.
4위는 대사질환, 5위는 압박성 신경병증입니다. 여기서 압박성 신경병증이란, 신경이 특정 경로를 지나가다 어딘가에 눌려 발생하는 병증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다섯 가지 원인 중 1, 2, 4, 5번은 결국 모두 말초신경 문제로 귀결됩니다. 혈류장애는 3번 하나뿐입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보고 나서야 "아, 내가 완전히 거꾸로 알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손발 저림의 5대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말초신경병증: 당뇨, 알코올, 비타민 B 결핍 등으로 말초신경 자체가 손상된 경우
- 척추신경 압박: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으로 신경근이 눌리는 경우
- 혈류장애: 심혈관 질환이나 고령으로 혈액 순환이 저하되는 경우
- 대사질환: 당뇨병, 만성 신장 질환 등이 말초신경을 2차적으로 손상시키는 경우
- 압박성 신경병증: 손목 터널 증후군처럼 특정 부위에서 신경이 반복적으로 눌리는 경우
특히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은 국내 당뇨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빈도가 높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암 치료 이후 면역 기능이나 대사 기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저로서는, 이런 내용이 단순한 의학 상식이 아니라 꽤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증상의 패턴이 원인을 구별하는 단서가 됩니다
제가 이 내용을 공부하면서 가장 유용하다고 느낀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림 증상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원인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대칭성(symmetry), 즉 양쪽에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지 여부가 중요한 단서입니다. 여기서 대칭성이란 왼쪽과 오른쪽에 같은 시기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패턴을 말합니다. 말초신경병증이나 대사성 신경병증은 약 90% 이상이 양쪽 손발에 대칭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척추신경 압박은 특정 신경근이 눌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신경이 담당하는 영역 한쪽에서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 디스크라면 어깨에서 한쪽 팔로, 허리 협착증이라면 한쪽 엉덩이에서 다리로 저림이 이어지는 식입니다.
압박성 신경병증은 더 좁게 나타납니다. 손목 터널 증후군의 경우, 손목을 지나는 정중신경(median nerve)이 눌리면서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에만 저림이 생깁니다. 여기서 정중신경이란 손목 안쪽을 지나 엄지 쪽 세 손가락의 감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입니다. 저림이 손 전체가 아니라 특정 손가락 몇 개에만 국한된다면, 이 압박성 신경병증을 먼저 의심해 볼 만합니다.
혈류장애는 패턴이 좀 다릅니다. 저림 증상보다 오히려 손발이 차갑고 시린 느낌이 더 두드러지고, 피부색이 창백해지거나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동 후에 증상이 악화되는 경향도 혈류장애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제 경우 손발이 저릴 때 색 변화는 없었기 때문에, 혈류장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물론 이런 판단이 진단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병원에 가기 전에 내 증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손발저림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는 경우, 신경전도검사(nerve conduction study)를 통해 말초신경의 전기 신호 전달 속도를 측정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경전도검사란 신경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가해 신호가 얼마나 빠르게 전달되는지를 측정하는 검사로, 말초신경병증 여부를 가장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손발 저림을 주소로 신경과를 찾는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손발저림을 혈액순환 문제로만 생각하면, 실제 원인인 말초신경 이상을 오래 방치할 수 있습니다. 암 치료 이후 비타민 결핍이나 대사 기능 변화가 신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이후로, 저는 저림 증상이 생기면 언제, 어느 쪽에, 어떤 느낌인지를 메모해 두기 시작했습니다. 막연히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유용한 습관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정보의 역할은 스스로 진단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 몸에서 오는 신호를 좀 더 정확한 언어로 파악하고, 필요할 때 제때 병원을 찾도록 돕는 것이 전부입니다. 특히 저림이 한쪽에만 나타나거나, 근력이 떨어지거나, 감각이 둔해지거나, 색 변화가 동반된다면 그냥 넘기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건강은 신호를 제때 알아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 손발저림 증상이 지속되거나 심해진다면 반드시 신경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