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발효균과 장 건강 (유산균, 누룩, 토종효모)

by 하얀 무지개 2026. 6. 20.

발효균과 장 건강 (유산균, 누룩, 토종효모)

항암치료를 받던 시절, 입맛이 완전히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소화가 되지 않으니 먹는 일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그때 의료진이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이 바로 장 건강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발효식품이 뭘 그리 대단하겠어' 하고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식습관을 바꾸고 나서 몸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그 작은 균들의 역할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유산균이 장을 바꾼다는 말, 얼마나 믿어야 할까

일반적으로 유산균 하면 요구르트나 프로바이오틱스 보충제 정도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처음엔 그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란 장 내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미생물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몸속에서 유익한 역할을 하는 균을 가리키는데, 유산균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유산균은 당분을 먹고 젖산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장내 pH를 낮추고, 그 산성 환경이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합니다.

장내 미생물 균총(gut microbiome)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여기서 장내 미생물 균총이란 우리 장 속에 서식하는 수십 조 개의 미생물들이 이루는 생태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 균총의 구성이 면역 기능, 소화 흡수, 심지어 정신 건강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꾸준히 축적되고 있습니다.

제가 항암치료 중에 가장 힘들었던 증상 중 하나가 극심한 변비와 소화불량이었습니다. 이후 김치와 된장, 요구르트를 매일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몸의 리듬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발효식품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식이섬유와 유산균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장 환경 개선에 기여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도 체감한 사실입니다.

국내 연구에서도 김치 유래 유산균인 락토바실루스(Lactobacillus) 계열이 면역세포 활성화에 관여한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발효식품이 단순한 전통 식문화가 아닌 과학적 근거를 갖춘 건강 자원이라는 점에서, 값비싼 영양제보다 매 끼니 식습관이 먼저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우리 누룩과 토종효모,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까

발효균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꼭 마주치게 되는 씁쓸한 현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생물 자원 보유량은 세계 5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국내 식품 산업에서 사용하는 효모와 유산균 상당수는 외국산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설마 그 정도겠어' 싶었는데, 알고 보니 막걸리조차 일본에서 유래한 발효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상업용 제빵·양조효모입니다. 이 효모는 당분을 빠르게 분해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생성하는 능력이 뛰어나 반죽을 부풀리거나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데 탁월합니다. 문제는 이 균을 건조 가공해 상품화한 것이 프랑스 기업이고, 우리나라는 매년 수백만 달러 규모의 효모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룩 이야기는 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전통 막걸리 양조장에서는 통밀을 발로 밟아 공기를 빼고, 한 달 가까이 온도를 조절하며 곰팡이를 피워 누룩을 만듭니다. 이렇게 4대를 이어온 양조장이 전국에 몇 군데 남지 않은 현실은 단순한 전통 단절이 아니라 고유 미생물 자원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반면 국내 한 기업은 11년간 전국의 지리산, 설악산 등 청정 자연환경을 돌아다니며 샘플을 수집하고, 수천 종의 균을 테스트한 끝에 전통 누룩에서 제빵 적성이 뛰어난 토종 천연 효모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솔직히 이 대목에서는 감동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1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동안 이 자원에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토종 효모가 상업용 효모와 다른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발효 속도는 상업용 효모보다 느리지만, 발효력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빵의 풍미가 깊어집니다.
  • 상업용 효모로 만든 빵에서 느껴지는 균일화된 향 대신, 구수하고 담백한 한국 고유의 맛을 냅니다.
  • 천연 발효 과정에서 나는 특유의 자극적 냄새가 적어 식감과 신선도 유지에도 유리합니다.

나고야 의정서가 바꿔놓을 발효 산업의 판도

이 부분은 건강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저는 오히려 이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발효균이 단순히 음식과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라는 것을 처음 제대로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나고야 의정서(Nagoya Protocol)는 생물 유전 자원을 활용하여 얻는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공유하도록 규정한 국제 협약입니다. 쉽게 말해 외국의 생물자원을 활용해 수익을 내면, 그 이익의 일부를 해당 자원을 보유한 나라에 돌려줘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2014년 발효된 이 조약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향후 외국 생물자원을 이용할 경우 상당한 규모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역방향입니다. 만약 외국 기업이 김치나 된장에서 유산균을 분리해 지적재산권을 먼저 확보해 버리면, 정작 우리는 우리 전통식품에서 비롯된 균을 사용하면서도 로열티를 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실제로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사안입니다(출처: 국립농업과학원).

덴마크의 사례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계 1위의 유산균 기업이 자리한 덴마크는 1874년 설립된 한 기업이 22,000여 종의 균주를 보유하고 전 세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전체 생산량의 98%를 수출하는 이 규모를 보면, 균 하나의 산업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됩니다. 로봇을 활용해 96웰 마이크로타이터 플레이트(microtiter plate) 단위로 균을 동시에 배양하고 검증하는 체계적 시스템이 그 경쟁력의 기반입니다. 마이크로타이터 플레이트란 96개의 작은 칸이 있는 실험용 플라스틱 용기로, 수백 종의 균을 동시에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게 해주는 장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누룩을 산업적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2개사, 효모를 산업적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1개사에 불과합니다. 세계 5위의 미생물 자원 보유국치고는 너무도 초라한 현실입니다.

발효는 결국 오래 기다리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것 같습니다. 누룩 한 장이 완성되는 데 한 달이 걸리고, 토종 효모 하나를 찾는 데 11년이 걸렸습니다. 저도 항암치료 이후 몸을 회복하면서 건강이란 빠른 방법보다 꾸준한 습관에서 온다는 걸 배웠습니다. 매일 김치 한 조각, 된장국 한 그릇을 챙기는 일이 어쩌면 가장 확실한 투자일 수 있습니다. 우리 고유의 발효 문화와 토종 미생물 자원이 더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산업화로 이어지기를, 건강 회복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문제는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6Wq_L7etH8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