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도 한동안 음식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설명을 듣고 항암 일정을 받아 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머릿속이 꽉 찬 상태였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하루 세끼를 뭘 먹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답을 찾아 헤매다가, 음식과 몸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 이야기들을 만났고, 그게 제 식습관을 조금씩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암세포도 밥을 먹는다, 혈당지수의 함정
가장 먼저 충격으로 다가왔던 건 암세포도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똑같이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저는 빵이나 과자, 달달한 음료에 자주 손을 뻗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 혈당지수(GI, Glycemic Index)입니다. 혈당지수란 특정 음식을 섭취했을 때 혈중 포도당 농도가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지표입니다. 흰쌀밥이나 밀가루 음식처럼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포도당이 순간적으로 혈액 안으로 쏟아지게 됩니다. 이때 힘이 센 세포, 즉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가 이 포도당을 우선적으로 가져갑니다.
실제로 PET 검사(양전자방출단층촬영)에서도 이 원리가 그대로 활용됩니다. PET 검사란 방사성 포도당을 주사한 뒤 감마 카메라로 촬영해 암세포의 위치와 활성도를 확인하는 영상 검사 방법입니다. 포도당이 들어오면 암세포가 가장 먼저 흡수하는 성질을 역이용한 것이죠. 제가 이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 그동안 입맛 없다고 먹었던 단 음식들이 머릿속에 하나씩 스쳐 지나갔습니다.
탄수화물 자체를 무조건 끊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정상세포도 탄수화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어떤 탄수화물을 먹느냐입니다.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식품, 즉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을 선택해야 포도당이 전신 세포에 고르게 공급됩니다.
유방암과 에스트로겐, 체중이 곧 호르몬이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나서 의사가 체중 관리를 강조했을 때, 저는 솔직히 '왜 지금 외모 이야기를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중에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에스트로겐(Estrogen)은 여성 호르몬 중 하나로, 유방 세포의 증식과 분열을 자극하는 역할을 합니다.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되거나 오랜 기간 노출될수록 유방암 발생 위험과 재발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에스트로겐이 난소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방 조직에서도 에스트로겐이 분비됩니다. 즉, 체지방이 늘어나면 그만큼 에스트로겐 분비량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국내 여성암 발병률 통계를 보면 유방암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OECD 국가 전반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입니다(출처: 국립암정보센터). 에스트로겐 노출 기간이 길어진 것, 즉 초경이 빨라지고 폐경이 늦어지는 사회적 변화가 발병률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웠습니다. 항암 치료 중에는 몸이 쉽게 붓고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체중 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굶는 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결국 먹는 음식의 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고지방 고칼로리 동물성 식품을 줄이고, 채소 위주로 식단을 조정하는 것이 지방 조직에서 나오는 에스트로겐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콩과 비타민 C,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유방암 환자라면 콩을 먹어도 되는지에 대해 한 번쯤 혼란을 겪어봤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콩에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피했습니다. 그런데 콩에 들어 있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즉 이소플라본(Isoflavone)은 성격이 다릅니다. 이소플라본이란 콩류에 함유된 식물성 화합물로, 체내 에스트로겐 수용체에 먼저 결합하여 오히려 나쁜 에스트로겐이 수용체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점에서 유방암 환자에게도 두부, 두유, 청국장 같은 콩 가공식품이 권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시중에서 판매하는 두유 중에는 당류와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제품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집에서 두유를 만들어봤는데, 비린내가 나고 시중 제품과는 맛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첨가물의 차이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집에서 만든 콩물이나 두유가 불편하더라도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비타민 C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비타민 C는 용량에 따라 역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저용량 비타민 C: 항산화 작용, 면역 강화, 피로 회복에 도움
- 고용량 정맥 주사 비타민 C: 과산화수소를 생성해 암세포를 억제하는 기전으로 활용
- 먹는 비타민 C: 아무리 많이 먹어도 혈중 흡수량이 하루 약 2,000mg 수준으로 제한됨
항암 치료를 대신해서 비타민 C만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근거가 없습니다. 비타민 C는 정통 항암 치료를 보완하는 보완대체의학(CAM,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으로 분류됩니다. 보완대체의학이란 기존 의학 치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를 보완하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병행하는 접근 방식입니다. 이 두 가지를 혼동하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항암 중 식사, 이것만큼은 알고 먹어야 한다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는 식이요법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소화기 점막이 손상되어 구역감, 구토, 설사가 동반되는 경우에는 먹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채식만 고집하면 오히려 알부민(Albumin) 수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알부민이란 혈액 내 단백질 중 하나로, 수치가 낮아지면 면역력 저하와 전신 쇠약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저도 항암을 맞고 며칠 동안 거의 먹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주변에서 보양식을 챙겨줬지만 한두 숟갈도 넘기기 어려웠고, 억지로 먹으려다 토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럴 때 무조건 먹이려 했던 게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는 입으로 먹는 것보다 정맥 영양 공급을 통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을 직접 혈관으로 보충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암 환자의 영양 상태는 치료 결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으며, 영양 지원의 중요성은 국내외 임상 영양 가이드라인에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임상영양학회).
암 치료 중 식사 순서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채소를 먼저 먹고, 과일을 소량 먹은 뒤, 현미밥과 단백질 순으로 먹으면 혈당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서양식에서 샐러드를 먼저 내오는 방식이 혈당 관리 측면에서도 이치에 맞는 순서입니다.
암 치료는 병원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 아니라,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로 결정된다는 말이 제게는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항암제가 작용하는 시간은 길어야 12~24시간이지만, 그 이후의 20일은 결국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하는 시간입니다. 식단 하나를 바꾸는 것이 치료처럼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선택이 매일 쌓이면 몸의 상태는 달라집니다. 완벽한 식단을 만들겠다는 부담보다는, 오늘 한 끼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치료 중인 분들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여 본인 상태에 맞는 방향을 찾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