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진단을 받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무조건 푹 쉬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저 역시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항암이 끝났을 무렵에는 계단 한 칸을 오르는 것도 힘이 들 정도로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재활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림프 부종 관리와 함께 걱기 운동을 시작했고, 조금씩 슬로우 조깅까지 이어가다 보니 놀랄만큼 몸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10분 정도 걷는 것도 버거웠지만 어느 순간 계단을 오르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고, 예전보다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최근 암 환자들이 직접 트랙을 달리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접하고,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치료의 연장선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암 치료 후 운동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 해 드리려고 합니다.
암 환자에게 운동 효과, 정말 있을까
"암 환자는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꽤 많은 분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 역시 치료받던 시기에 그 말을 수도 없이 들었고, 한동안은 그게 맞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재활운동을 시작하면서 느낀 건 달랐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근육이 빠지고, 근육이 빠지면 오히려 체력 회복이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을요.
이런 경험이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의학 연구들도 뒷받침합니다. 달리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암 환자의 체력 증진뿐 아니라 면역력(우리 몸이 외부 병원체나 암세포를 스스로 방어하는 능력)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운동을 꾸준히 한 암 환자군이 그렇지 않은 군보다 생존율이 일관되게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암 예방 측면에서도 운동의 역할은 작지 않습니다. 정기적인 신체 활동이 여러 암의 발병 위험을 10~15% 낮추고, 대장암·유방암·자궁내막암의 경우에는 20~30%까지 위험도를 줄여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처럼 운동이 암 예방과 치료 모두에 관련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내용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만성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해 주 150분 이상의 중등도 신체 활동을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신체 활동 가이드라인).
- 운동을 꾸준히 한 암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생존율이 높게 나타남
- 신체 활동은 근육 감소(근감소증)를 막고 심폐기능 저하를 예방함
- 대장암·유방암·자궁내막암은 운동으로 발병 위험을 최대 20~30% 낮출 수 있음
- 정서적 안정감과 우울감 완화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됨
면역력과 달리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저는 유방암 수술 후 림프부종 재활을 시작할 때가 가장 막막했습니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 하나도 당겨서 하기 힘들었고, 이게 정말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 의심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팔이 올라가는 각도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작은 변화가 운동을 계속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라면 걷기부터, 그다음 빠른 걷기, 그리고 조금씩 달리기로 이어가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브리스크 워킹(Brisk Walking), 즉 약간 숨이 차는 수준의 빠른 걷기부터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여기서 브리스크 워킹이란 옆 사람과 대화는 가능하지만 노래는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걷는 운동 방식을 뜻합니다. 이 정도 강도에서부터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숨이 찰 정도'로 운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는 시각도 있다는 겁니다. 중고강도 이상의 운동이 면역력을 자극하고 암 재발 예방 효과도 더 뛰어나다는 의견인데, 저는 이 부분이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체력 수준, 치료 단계, 복용 중인 약물 종류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재활운동을 시작할 때도 담당 물리치료사와 먼저 상담을 했고, 제 몸 상태에 맞는 강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암 4기 자궁내막암으로 폐 전이까지 있었던 한 환우는 요양병원 복도를 하루 100보씩 걷는 것부터 시작해 결국 만보 이상을 매일 걷게 됐다고 합니다. 처음 1,000보에서 3,000보, 5,000보로 점진적으로 늘려간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지금 당장 뛸 수 없다'는 것이 '운동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생존율을 바꾼 새로운 치료와 운동의 결합
암 치료 분야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변화 중 하나는 항체약물접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의 등장입니다. ADC란 암세포 표면의 특정 단백질을 찾아가는 항체에 강력한 항암제를 결합시킨 치료제로, 쉽게 말해 '표적 미사일'처럼 암세포 내부로 직접 들어가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주변 정상 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위암 4기에 복벽 전이까지 있었던 한 환자는 기존 항암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자 ADC 기반 신약 임상 시험에 참여했고, 6개월 만에 암세포가 약 60% 줄어드는 결과를 경험했습니다. 제가 이 사례를 접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존에 5기 생존율이 5% 미만이었던 재발·전이 위암 환자들 사이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실제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면역항암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도 빠질 수 없습니다. 면역항암제란 암세포가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면역계 스스로 암을 공격하게 만드는 치료제입니다.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병용할 경우 일부 환자에서 완치에 가까운 결과도 보고되고 있으며, 자궁내막암·위암 생존자 중 일부는 전신 전이 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현재 암세포가 거의 사라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암정보서비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신치료들이 운동과 별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치료제가 면역 반응을 자극하는 만큼, 환자 스스로 면역력과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치료 반응을 높이는 데 함께 기여한다고 봅니다. 육체적 관리와 정신적 관리가 함께 갔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는 거죠. 제 경험상 이건 정말 그렇습니다. 재활운동을 꾸준히 한 기간과 몸 상태가 좋아진 시기가 정확히 겹쳤으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항암 치료 중에도 운동을 해도 되나요?
A.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치료 중에도 몸 상태에 맞는 가벼운 운동은 오히려 권장한다고 말합니다. 항암 치료 후 기력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짧은 걷기부터 시작하고, 반드시 담당 의사나 재활 전문가와 상의 후 강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리한 운동보다 꾸준한 운동이 훨씬 중요합니다.
Q. 암 환자 달리기, 얼마나 뛰어야 효과가 있나요?
A. 처음부터 거리와 속도에 집중하기보다는 '조금씩 자주'가 기본입니다. 처음엔 걷기로 시작해 브리스크 워킹, 슬로우 조깅 순으로 단계적으로 늘려가는 방법이 현실적입니다. 개인 체력과 치료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주 몇 회, 몇 분이라는 정답보다 지속 가능한 루틴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Q. 면역항암제를 쓰면 운동해도 부작용이 없나요?
A. 면역항암제는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전신 피로감이 적은 경우가 많아 운동 병행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면역항암제도 염증 반응 같은 고유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운동 강도를 무작정 높이기보다 몸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조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Q. 혼자 운동하는 게 무서운데 같이할 방법이 있나요?
A. 동반자와 함께하는 운동이 여러모로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건 전문가들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혼자서는 선뜻 나서기 어렵다면 가족이나 배우자와 함께 짧은 산책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일부 병원이나 의료기관에서는 암 생존자 대상 러닝 크루나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으니 담당 의료진에게 문의해 보시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결론
'암 환자는 쉬어야 한다'는 말과 '안전하게 움직여야 더 잘 회복된다'는 말,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리고 점점 많아지는 연구 결과들을 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중요한 건 무조건 많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전문가와 상담하며 꾸준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달리기든, 걷기든, 재활운동이든 첫걸음은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것입니다. 거창한 목표보다 오늘 딱 10분, 그 10분을 이어가는 것이 결국 회복의 속도를 바꿉니다. 암이라는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께, 작은 한 걸음이 생각보다 훨씬 큰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
참고: KBS 생로병사의 비밀 — 암세포가 멈췄다? 위암 4기·폐 전이 환자들이 운동화를 신고 트랙으로 나선 이유 (20260204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