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저녁마다 과자 봉지를 뜯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유방암 진단 이후로도 그 습관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살이 찌는 건 단순히 많이 먹어서가 아니라, 뇌와 호르몬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였습니다.

도파민 교란: 과자가 끊기지 않는 진짜 이유
일반적으로 살이 찌는 이유를 "의지가 약해서"라고 말하지만, 제 경험상 그건 너무 단순한 설명입니다. 저도 암 투병 중에 스스로를 꽤 많이 탓했습니다. 왜 이걸 못 참지? 왜 또 먹었지? 그런데 사실 우리 뇌는 이런 음식을 먹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란 단순한 가공식품이 아니라 인공 향미료, 보존제, 유화제 등을 다량 첨가해 자연식품의 형태를 거의 찾을 수 없는 공산품 수준의 식품을 말합니다. 과자, 라면, 달콤한 음료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식품들은 대부분 탄수화물과 지방을 절반씩 섞어 놓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도파민(dopamine)이란 뇌의 보상 체계를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쾌감이나 동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원래 인류는 먹을 것이 부족할 때 고칼로리 음식을 발견하면 도파민이 터지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자극적인 음식이 다음 날 바로 배달됩니다. 뇌는 이 상황에서 과거의 생존 본능 그대로 반응합니다.
더 심각한 건 우리가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을 때입니다. 수면이 부족하고 피곤한 상태에서는 이런 고열량 식품에 뇌가 더 높은 가중치를 두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다이어트한다고 밥을 줄였다가 저녁에 과자를 왕창 먹게 되는 것도 이 원리입니다. 포만감 호르몬인 렙틴(leptin)이 낮은 상태에서 에너지 밀도가 높은 식품이 들어오면 뇌는 도파민 보상을 왜곡해서 분비합니다. 저는 이 패턴을 암 치료 중에 너무 선명하게 경험했습니다.
대사 회복: 몸이 망가지는 순서가 있었다
살이 찐다는 건 사실 하나의 신호입니다. 표면적인 체중 증가 아래에는 대사 도미노가 조용히 쓰러지고 있습니다.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이란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밀어 넣는 인슐린의 신호를 세포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고, 그 결과 여분의 에너지가 지방으로 축적됩니다. 당뇨병, 고지혈증, 심혈관 질환 모두 이 도미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저는 유방암을 겪으면서 체중 관리와 대사 건강이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특히 폐경 후 유방암의 경우 비만과의 연관성이 보고된 바 있고(출처: 국립암센터), 이 사실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장내 미생물(gut microbiome)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장내 미생물이란 대장을 중심으로 수십조 개가 공생하며 면역, 소화, 호르몬 분비까지 관여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말합니다. 초가공식품 위주의 식사는 이 생태계를 무너뜨립니다. 식이섬유가 부족해지면 유해균이 늘고, 이 유해균이 염증을 만들며, 포만감 호르몬인 GLP-1의 분비도 줄어듭니다. GLP-1(glucagon-like peptide-1)이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약물이 바로 이 GLP-1 수용체에 작용하는 방식입니다.
살이 찌는 악순환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초가공식품 섭취 → 도파민 보상 왜곡 → 더 먹고 싶어짐
- 활동량 감소 → 혈당이 지방으로 저장 → 몸의 염증 증가
- 염증 증가 → 수면 질 저하 → 다음 날 충동성 증가 → 다시 자극적인 음식 탐색
- 장내 미생물 변화 → GLP-1 분비 감소 → 포만감 더 느끼기 어려워짐
항암 치료를 마치고 회복기에 잘 먹다 보니 살이 붙었고, 그러면서 운동은 더 하기 싫어지고, 잠도 잘 못 자는 이 순환이 제 몸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습니다.
수면과 식습관: 작은 것부터 바꿔보니 달랐다
일반적으로 다이어트라고 하면 식단을 확 줄이거나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는 것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방법은 거의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너무 많이 바꾸려 하면 며칠 못 버팁니다.
수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오카인(myokine)이란 근육이 수축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 물질로, 피로감을 유발해 자연스러운 수면 압력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낮에 움직이지 않으면 마이오카인 분비 자체가 줄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아침에 커튼을 여는 것만으로도 약 15시간 후 멜라토닌 분비를 유도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저는 실제로 며칠 해봤습니다. 처음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잠드는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식사에서는 아침에 단백질과 수용성 식이섬유, 적정량의 지방을 먼저 챙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하면 같은 점심을 먹더라도 식후 혈당 스파이크(blood sugar spike, 즉 혈당이 급격히 치솟는 현상)가 최대 70~90%까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계란 두 개와 요거트, 블루베리 정도면 단백질 15g 이상을 손쉽게 채울 수 있고, 점심에 국수를 먹어도 혈당 반응이 달라집니다.
외식할 때도 1-2-3 원칙을 기억하면 도움이 됩니다. 첫 번째로 식이섬유를 찾고, 두 번째로 단백질을 확인하고, 세 번째로 골고루 먹는 순서입니다. 이게 처음엔 복잡하게 느껴졌는데 1~2주 반복하다 보니 어떤 식사에 단백질이 부족한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과자를 사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이 간식을 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 덜 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지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입니다.
GLP-1 제재와 생활 중재: 약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요즘 GLP-1 제재 약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저도 주변에서 마운자로, 위고비 맞고 살 빠졌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습니다.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중독 관련 연구에서도 GLP-1 제재를 사용한 환자군에서 새로운 중독이 생기는 확률이 14~20%까지 낮아진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도파민 보상 체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약만 맞으면 된다는 분위기가 생각보다 심합니다. 문제는 생활 중재 프로그램(lifestyle intervention program) 없이 약만 쓰면 근감소증(sarcopenia) 위험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근감소증이란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는 상태로, 대사율 저하와 낙상 위험 증가로 이어집니다. 특히 단백질과 지방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액상과당이나 면류 같은 음식 선호도가 오히려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어서, 약을 쓰는 동안 식습관을 함께 재설계하지 않으면 약을 끊은 뒤 오히려 더 나쁜 식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식품의약품안전청 모두 GLP-1 제재 사용 시 생활 중재 프로그램을 병행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FDA). 한 달 만에 10kg을 빼는 속도는 대부분 근육 손실을 동반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빠른 감량이 무조건 좋은 신호가 아닌 이유입니다.
특히 저처럼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내장 지방이 있고 근육량이 부족한 '근감소성 비만' 상태라면 더 주의해야 합니다. 여성에게서 BMI만으로는 실제 체성분을 파악하기 어렵고, DEXA 검사(이중에너지 X선 흡수계측법으로 골밀도와 체성분을 정밀 측정하는 검사)를 통해 내장 지방과 근육량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훨씬 정확합니다.
다이어트를 단순히 체중 숫자로만 바라봤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하면 조금 허무하기도 합니다. 살을 빼는 것보다 몸의 대사 시스템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이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침 식사 한 끼, 식후 15분 걷기, 잠들기 전 스마트폰 내려놓기. 거창하지 않아도 이 순서를 맞춰가다 보면 몸이 달라집니다. 저도 지금 그 과정을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건강에 대한 고민이 있으시다면 전문의와 함께 체성분부터 확인해 보시는 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문제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