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지방간이 술 마시는 사람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니 간 걱정은 해본 적도 없었죠. 그런데 최근 피곤함이 가시질 않아 간 건강을 찾아보다가 제 상식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지방간이고, 그 대부분은 술과 무관한 비알코올성이라는 사실 앞에서 꽤 오래 멍했습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술을 안 마셔도 생긴다
저처럼 "술을 안 마시니 간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텐데, 저는 이번에 그 생각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지방간은 크게 알코올성과 비알코올성으로 나뉩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NAFLD)이란 알코올 섭취와 무관하게 과잉 에너지가 지방으로 변환되어 간에 축적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먹은 것을 제때 태우지 못하면 그 찌꺼기가 간에 쌓인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지방간 환자 대부분이 알코올성이라고 여겼지만, 현재는 전체 지방간 환자의 94%가 비알코올성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간 이식의 두 번째 주요 원인이 될 만큼 심각한 질환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당뇨소화기신장질환연구소(NIDDK)). 수치 앞에서 더 이상 "나는 괜찮겠지"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지방간은 전체 간세포 중 지방을 포함한 세포가 5%를 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정상 간은 암적색에 표면이 매끄럽지만, 지방간은 간 자체가 노랗게 변하고 크기도 커집니다. 이걸 알고 나서 제가 먹어왔던 것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과식, 불규칙한 식사, 줄어드는 활동량. 어디 하나 무관한 게 없었습니다.
- 비알코올성 지방간(NAFLD)의 주요 원인: 과잉 열량 섭취, 운동 부족, 복부비만, 당뇨병, 고지혈증
- 마른 체형이라도 근육량이 부족하면 전체 지방간 환자의 약 20%를 차지하는 '마른 지방간'이 발생할 수 있음
- 지방간 방치 시 진행 순서: 지방간 → 지방간염 → 간섬유화 → 간경변증 → 간암
간수치가 높다는 말, 정확히 무슨 뜻일까
"간에 불났다"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으시죠. 저도 처음엔 그 말이 막연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간수치란 AST와 ALT라는 효소의 혈중 농도를 측정한 값입니다. AST(아스파르테이트아미노전이효소)와 ALT(알라닌아미노전이효소)는 원래 간세포 안에 존재하는 효소인데, 간세포가 손상되면 이 효소들이 혈액으로 빠져나오게 됩니다. 즉 수치가 오를수록 간세포가 그만큼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일반적으로 40 이하를 정상 범위로 보는데, 이보다 높다면 지방간 외에도 간염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방간에 염증이 더해진 상태를 지방간염(NASH)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NASH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onalcoholic Steatohepatitis)의 약자로, 단순 지방간보다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할 위험이 훨씬 높습니다. 간 경직도를 나타내는 수치가 13 이상이 되면 간경변증으로 분류되는데, 그 경계에 근접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 지방화 정도를 확인하는 초음파 검사에서 정상 간은 어두운 회색으로 나타나지만, 지방이 많이 낀 간은 한눈에 봐도 하얗게 보입니다. 또한 CAP(제어 감쇠 파라미터)라는 수치로 지방간 정도를 정량화하기도 하는데, 300 이상이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분류됩니다. 저는 이 수치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지금 몸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체감했습니다.
지방간에 약은 없다, 생활습관이 유일한 답이다
간에 좋다는 건강기능식품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도 솔직히 그쪽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 지방간 치료에 공식적으로 승인된 약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미국 FDA에서 허가받은 약물이 하나 존재하지만 국내 도입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출처: 미국 식품의약국(FDA)). 간 영양제는 간세포 회복을 간접적으로 돕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지방간 자체를 개선하는 효과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방간을 되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생활습관 개선입니다. 체중의 5%만 감량해도 간 내 지방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7% 이상 감량하면 염증 세포까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무리하게 빼는 것은 오히려 간 건강을 해칠 수 있어, 일주일에 1kg 이내의 속도가 안전합니다. 저는 유방암 치료 이후 체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라 무리한 감량은 아예 선택지에 없었고, 오히려 이 원칙이 저한테는 현실적인 기준이 됐습니다.
식습관에서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하루 500칼로리를 줄이는 일입니다. 들었을 때는 막막했는데, 치킨 두 조각이 약 300칼로리, 밥 한 공기가 약 300칼로리라는 걸 알고 나서 조금 실감이 났습니다. 채소를 먼저 먹고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하는 채소 우선 식사법을 실천하면 혈당 급등을 억제하고 과식도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밥을 1분의 1 공기로 줄이고 간식을 끊는 것만으로도 하루 500칼로리 감량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제 귀에 꽤 오래 남았습니다.
- 지중해식 식단의 핵심: 통곡물 섭취(정제 탄수화물 제한), 생선류로 양질의 단백질 보충, 올리브유 등 불포화지방산 위주의 좋은 지방 섭취
- 식사 순서: 채소 → 단백질 → 탄수화물 순서로 먹으면 혈당 조절과 과식 예방에 동시에 효과적
- 감량 속도: 주당 1kg 이내가 간 건강을 지키는 안전한 기준
운동,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운동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무릎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치료 이후 관절에 부담이 생겨서 격렬한 운동은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방간을 위한 운동이 반드시 헬스장이나 등산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었습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을 처음엔 "그게 말이 쉽지"라며 반신반의했습니다.
유산소 운동(aerobic exercise)이란 산소를 이용해 체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태우는 운동을 말합니다. 걷기, 자전거, 수영이 대표적이며 지방 연소에 직접 기여합니다. 반면 근력 운동은 근육량을 늘려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근육이 많을수록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지방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병행할 때 지방간 개선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관절이 걱정된다면 앉은 자리에서 하는 엉덩이 걷기(골반을 앞뒤로 밀어내며 이동하는 동작)나 누운 자세에서 하는 브리지 운동, 하늘 자전거 운동도 충분한 대안이 됩니다. 제자리에서 무릎을 골반 높이까지 높이 들어 올리며 걷는 고니기 걷기를 상체 비틀기와 함께 하면 복부 근육까지 함께 활성화됩니다. 한 발로 서서 눈을 감고 버티는 균형 훈련은 근력을 측정하는 동시에 직접적인 운동 효과도 있습니다. 30초를 버티면 20대 수준, 10초 이하면 60대 수준이라는 기준은 처음 접했을 때 꽤 찔렸습니다.
- 관절 부담 없는 실내 운동: 앉아서 하는 엉덩이 걷기(앞 20회·뒤 10회, 5세트), 누워서 하는 브리지 운동 및 하늘 자전거(각 20~30회)
- 서서 하는 운동: 무릎을 골반 높이까지 드는 제자리 고니기 걷기 + 상체 비틀기 병행
- 균형 훈련: 한 발 서기(눈 감고) — 하루 5회, 30초 목표로 꾸준히 반복
3주 만에 간 지방화 수치가 상당 폭 개선되고, 간 경직도 수치가 낮아졌다는 실제 사례를 보면서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구나"라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치료 중이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간 건강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증상이 없다고 안심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태도라는 말이 제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정기 건강검진에서 간수치(AST·ALT)와 초음파 검사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 그리고 매끼 채소를 먼저 먹고 근력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 거창한 결심보다 이 두 가지를 일상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 지방간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간은 말이 없는 장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