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압이 정상이면 녹내장은 걱정 없다고 생각하셨다면, 저처럼 잘못 알고 계셨던 겁니다. 저는 며칠 전 광시증과 비문증으로 안과를 찾았다가 뜻밖에도 녹내장 전 단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녹내장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놀라움과 걱정이 너무 컸습니다. 또한, 유방암 치료 중이라 건강 불안이 높아진 상태에서 그 말은 꽤 묵직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녹내장이 실제로 어떤 병인지, 왜 정기검진이 그렇게 중요한지 제대로 파고들어 봤습니다.
안압이 정상이어도 생기는 녹내장, 우리나라의 현실
녹내장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주로 찾아오는 병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또 치료가 힘든 병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안압이 높을 때 생기는 병이라고 오래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국내 녹내장 환자의 약 80%가 정상안압 녹내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안압이 21mmHg 이하인 정상 범위에 있어도 병이 진행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정상안압 녹내장이란 안압 수치는 문제없지만 시신경 유두, 즉 시신경이 안구와 연결되는 입구 부분이 구조적으로 약해 정상적인 압력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손상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안구 뒤쪽 공막, 쉽게 말해 안구를 감싸는 흰 막 조직이 서양인보다 한국인에게서 평균적으로 얇다는 연구 결과가 그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증 안구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 차이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최근 10여 년 사이 국내 녹내장 환자 수는 큰 폭으로 늘어 121만 명을 넘어섰는데(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 증가세의 핵심 원인으로 정상안압 녹내장 환자의 증가가 꼽힙니다. 더구나 한국인은 40대부터 이른 발병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녹내장은 노인 질환"이라는 인식 자체를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내가 이제 50세인데 녹내장이 의심된다는 결과를 받았으니, 녹내장은 단순히 고령인구의 병은 아님을 이번 기회에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근시가 녹내장 위험인자인 이유
이번 경험에서 제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부분은 근시가 녹내장의 위험인자라는 점이었습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이 긴 현대인이라면 사실 대부분이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안과에서 근시로 인해 시신경 주변이 약해져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근시란 망막 앞쪽에 상이 맺혀 가까운 곳은 잘 보이고 먼 곳은 흐리게 보이는 굴절 이상을 말합니다. 이때 안구의 전후 길이인 안축장이 길어지는 것이 원인인데, 특히 안축장이 26.5mm를 넘는 고도근시의 경우 안구 뒤쪽 공막이 뒤로 늘어나 시신경 유두 주변 조직이 압력에 취약해집니다. 일반적인 안축장이 약 23mm인 것을 감안하면, 27~28mm에 달하는 고도근시 환자는 구조적으로 이미 다른 조건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청년층 근시 유병률은 80~90%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합니다(출처: 대한안과학회). 높은 교육열과 디지털 기기 사용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모든 근시 환자가 녹내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신경 유두 주변 조직의 변형이 심한 경우 발병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아집니다. 근시가 있다면 단순 시력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녹내장 위험인자로도 인식해야 한다는 것, 제 경험이 이를 더욱 실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의 주요 위험인자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도근시 (안축장 26.5mm 이상)
- 40대 이상의 연령
- 가족력 (유전 질환이 아닌 가족력 개념)
- 혈액순환 장애 (당뇨, 협심증 등 전신 질환 포함)
- 시신경 유두 주변 조직의 구조적 취약성
소리 없는 시력 도둑, 정기검진이 유일한 방어선
녹내장이 '소리 없는 시력 도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고, 말기가 되어서야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는 터널 시야가 나타납니다. 터널 시야란 빨대 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중심부 외의 시야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단계가 되어서야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오면 이미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저도 광시증 증상이 생기기 전까지는 눈 건강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통증이나 불편함 없이는 병원 갈 이유를 못 느끼는 게 사실이니까요. 유방암을 겪으며 정기검진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눈에 대해서는 그 교훈을 적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걸 모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녹내장의 조기 발견을 위해 필요한 검사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안압 측정, 시신경 유두의 형태를 확인하는 안저 촬영, 실제 기능 손실 여부를 파악하는 시야 검사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묶어 녹내장 진단의 기본 골드 트라이어드라고 부릅니다. 특히 정상안압 녹내장을 놓치지 않으려면 안압 수치만 확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시신경의 구조적 변화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제가 6개월 간격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엔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니 납득이 됐습니다.
치료와 생활관리, 진단받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녹내장을 진단받으면 많은 분들이 실명에 대한 공포부터 느낍니다. 그런데 정상안압 녹내장은 녹내장 중에서도 가장 천천히 진행하는 유형으로, 꾸준히 치료하고 관리하면 생애 중 실명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문제는 치료를 중단하거나 방치하는 경우인데, 이때 실명률이 15%까지 오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치료의 핵심은 안압 하강제 점안약, 즉 안약 투여입니다. 안압 하강제란 눈 안에서 만들어지는 방수의 생성을 억제하거나 배출을 촉진해 안구 내 압력을 낮추는 약물을 말합니다. 정상안압 녹내장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안압을 더 낮춤으로써 이미 약해진 시신경 유두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루 한 번 자기 전에 넣는 것만으로도 10년 이상 시신경 손상 진행을 억제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작은 루틴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암 치료를 하면서 충분히 실감하고 있습니다.
생활관리도 빠질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카테콜아민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눈으로 가는 혈류를 줄이고, 부신피질 호르몬은 안압을 올립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압은 높아지고 혈류는 줄어드는, 녹내장에는 최악의 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유산소 운동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스트레스 반응을 줄여 녹내장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단, 과도하게 무거운 중량을 들며 숨을 참는 고강도 근력 운동은 안압을 급상승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50대가 된 지금, 저는 눈 검진을 건강 루틴에 정식으로 포함했습니다. 암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가볍게 넘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번 경험이 불안을 키우기도 했지만, 오히려 일찍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큽니다. 혹시 근시가 있거나 40대 이상이라면, 별다른 불편함이 없더라도 안과에서 시신경 검사를 한 번은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학습을 공유한 것이며, 구체적인 진단과 치료는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